
아파트에서 바라본 칭따오 바닷가
어느 날 갑자기 새마을 금고가 문을 닫아 예금 한 돈을 인출하지 못하듯이, 2013년 나에게도 그런 일이 발생
하였다. 예금 한 돈도 문제지만, 당장 수익을 창출하는 길이 막혀서 암담한 상황을 맞이했다. 년 월세를 선불로
지불하여 얼마 동안은 월세를 낼 일도 없고, 생활비 지출도 많지 않아서, 한동안 집안에서 인터넷으로 공부만
하고 지냈다. 그때의 일로 철학, 종교, 양자 물리학 등에 입문하게 되었다. 세상은 주는 것이 있으면 뺐 는 것도
있고, 뺏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몇 개월을 공부만 하고 지내다가 아파트가 만료되었지만,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재계약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할 수 없이 네이버 카페에 있는 칭따오 한인들의 모임에서 집을 알아보다가 누군가 아파트를 임대한다는 글을
본 후, 급하게 계약을 하였다.
이사한 아파트는 거실과 방 하나에 조그만 베란다가 있었는데, 안방에서 칭따오 앞바다가 훤하게 보여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집 앞에 조그마한 섬이 있었는데 돌로 쌓은
다리를 지나 집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곳이기에, 섬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고 개운해졌다.
당시 숭어의 산란 철이었는지 섬 근처로 몰려드는 숭어를 잡는 낚시꾼들의 바구니가 잡힌 숭어로 가득 찾다.
점심에는 집 앞에 있는 만두 가게에서 대바구니로 쪄서 만든 5元(600원)짜리 만두를 칭따오 맥주랑 거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던 생각이 난다. 창문만 열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탁 트인 남쪽 바다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 편의 그림 같았다. 이곳에서 몇 개월은 형편은 어려워도 마음은 편안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나에게 아파트를 빌려주었던 청년은 칭따오에 회사일로 중국에서 근무하다 아내가 출산을 하여 급하게
한국에 갔다 와야 할 사정으로 집을 임대 하였는데, 내가 입주하니 인테넷이 끊겨있어, 한국에 있는 청년에게
물어보니 본인은 분명히 입금을 했다고 말했다. 정작 급한 것은 나였기에, 나는 통신사에 들러 인터넷 비용을
지불하고 wifi를 사용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당시 이 청년이 인터넷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본사는
영수증을 갖고 와야만 인정할 수 있다고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영수증은 이미 버렸기 때문에 별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 중국에서 이런 비 상식적인 일들이 자주 있었다. 어느 날 컴퓨터 작업을 하던 중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변압기 등이 고장 나서 그런가? 나가 보니, 우리 집만 정전이 되었다. 아파트 관리소에
가서 알아보니 전기료가 제 날에 입금 안 되어 강제로 전원을 차단한 것이었다. 잠깐 씩 와서 도와주던 조선족
아주머니가 관리비 내는 것을 잃어버렸는지 한국에선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당했었다.
통보를 해 주면 될 일을 예고도 없이 차단기를 내려 버리는 관리소 직원이 무서워, 선불로 빠져 나가는 통장을
만들려고 가까운 은행에 들렀다. 용건을 말하니 여권을 달라고 해서 준비한 여권을 전해주니, 나보고 여권을
카피해, 복사본을 가지고 오라 한다. 계속 잡담하는 여직원들 바로 옆의 복사기가 나의 눈에 아직도 생생하다.
또 어떤 날, 난방비를 입금하러 간 적이 있었다. 중국은 오후 4시에 업무를 마감하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서
3시 50분쯤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창구에서 입금을 한다고 말하니 근무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며 말하길
업무 끝났으니 내일 다시 오란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누리고 사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하긴 모든 상식이
제대로 작동된다면 정부나, 언론이나, 종교가 왜 필요할까? 그냥 이런 사회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인정하는 것이 속 편할지도 모른다?
2013년. 여름 칭따오 바닷가 아파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