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에서 압록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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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에서 압록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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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시죠? 서울은 날씨가 어떤 지 모르겠네요? 저는 어제 눈 내린 백두산을 보고 지금 심양에 와 있습니다.
중국이 큰 나라라는 건 알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체험을 한 것 같네요. 비행기 탑승 거리를 빼고도 장장
2,500키로를 버스와 기차에 몸을 싫고 이곳 저곳을 여행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 여느 때처럼 아침 일을 마감하고 반복 되는 뻔한 일상에 갑자기 무료함이 몰려들어 이것 저것
생각 없이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백두산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디를 며칠 동안 있다 올지
구체적인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라 여행이 좀 길어졌습니다.
 
청도를 떠날 때는 가벼운 가을 옷 차림이었는데 길림성의 성도인 장춘에 와서 겉옷을 꺼내 입고, 연길에 와서
결국 겨울 점퍼를 사서 입었습니다. 주로 길림성지역을 여행했는데, 장춘을 거쳐서 연길시, 도문, 용정 그리고
백두산을 보고 통화, 단동으로 해서 어제밤 심양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 북쪽 끝 중국과의 경계 지점인 지역을 두만강에서 부터 압록강아래까지 보고
온 셈이네요. 원래 주 목적은 백두산을 보는 것이었으나, 제가 원래 유명 관광지보다, 시장 같은 곳을 구경하며
사람이 살아가는 정취를 느끼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정작 백두산에서 이틀 밖에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중국에서 우리 동포들이 제일 많이 산다는 이곳 길림성, 특히 연길은 마치 작은 한국 같았습니다. 어디를 가도
한글이 적혀있는 간판, 옷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우리나라 유행 가요, 노래방, 룸싸롱, 피시방... 이곳 동포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나서 지금은 한족이 더 많이 보이지만 거리를 지나다 보면, 특유의 연변 사투리를
여기 저기서 들을 수 있습니다.
 
연길에 오면 누구나 가보는 용정에 있는 윤동주시인의 생가와 일송정, 혜란강을 둘러 보았지만, 의외로 사람이
없고 개발이 안 되어 그런지 적막함이 느껴졌습니다. 연길에서 1시간 거리의 북한 접경 지역인 도문시에 도착,
두만강변을 걷다가, 길거리 커피숍에서 조선족 아가씨가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들었는데 두만강에서
들어서 그런지 좀 생뚱맞긴 했지만 그 노래 특유의 간드러짐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념의 강도 이제 세월 앞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두만강에서 "두만강의 노 젖는 뱃사공:” 대신
"사랑밖에 난 몰라~"를 듣는 곳이 현재의 이곳 연변 모습입니다.
 
 
이번 여행은 일정이 길어서 하던 일을 쉴 수가 없어서 오전에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여행을 하려고
하였으나 시작부터 일이 꼬여 장춘에서 날 밤을 세우고 남은 일정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중국으로 건너 온 지
일 년 정도 됐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여 어느 정도 수입도 생겨, 여행도 다닐 형편이 되었지만 아직 까지
목표한 곳이 멀리 있어 마음은 늘 조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하면서도 일에서 손을 놓기가 어렵습니다.

작년 말에 이곳 심양에 도착하여 안산이라는 도시에 산도 등정하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철길이 있는 단동에서
6.25전쟁으로 끊어진 압록강 다리와 건너편 북한 땅을 보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갑니다.
당시 처음으로 중국에서 한 달을 체류하면서 중국의 체취를 느끼며, 중국에서 살 결심을 해준 곳이기도 하기에
이곳 심양은 나한테는 의미 있는 도시입니다.
 
큰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는 집에 생활비도 보내주고 있고, 빛도 조금씩 갚아 나가고 있기에
언젠 가는 이곳에서 자립해서 우리 가족과 같이 살고 싶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이 만큼의 성과가
과연 우리 회원들이 아니면 가능했겠나 싶습니다.
 
일산이를 비롯한 운영진의 눈에 안 보이는 노력들. 여러 좋은 정보들을 끊임없이 올려주고 도와주는 회원님들
덕분에 밑바닥에서 지금의 성취를 이룬 것 같습니다. 노력하면 그 대가가 반드시 따라오고 그것들에 감사하는
초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낮 선 곳이기에 오늘은 더욱 회원님들을 보고 싶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우리 조상들의
영토였던 만주를 떠나 칭따오로 갑니다. 예전에 이렇게 큰 중국과 맞서 이 작은 땅을 지켜 낸 우리 민족은 분명
보통 민족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국의 속국으로 오랫동안 살고, 일제에 식민지를 겪으면서도 일천한 역사 속에서 산업 발전으로 중국인들이
부러워하는 뭔 가를 보여주는 모습만 보더라도 비록 몇 가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 저력 있는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그 시점이 오는 날까지 서로 밀어주고 격려하여 척박한 이 땅의 우리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칭따오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2007년 10월 19일 심양에서 나무